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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에이드’: 선거 밖에서의 대표 정치와 정치적 재현

홍철기 |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1970~1980년대가 전성기였던 영국 록 그룹 퀸(Queen)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의 국내 누적 관객이 600만을 돌파했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라디오 가가>와 <언더 프레셔> 중 어 느 곡이 더 좋은지 이야기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전자는 1977년, 후자는 1982년 곡이다. 이 영 화의 클라이맥스는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 실황이다. 며칠 전에는 1985년 당시 장면을 녹화 방송했던 방송사가 ‘라이브 에이드’ 전체를 100분 분량으로 편집하여 재방송을 할 정도로 이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1985년 7월 13일 토요일에 개최된 ‘라이브 에이드’는 어떤 행사였을까? ‘로큰롤’ 혹은 ‘음악이 세 계를 바꾼 날’로 기록된 이 공연은 퀸이 무대에 등장했던 런던의 구 웸블리 경기장(관객 7만 2천명) 과 대서양 건너편의 필라델피아 JFK 경기장(관객 10만명)에서 주로 진행되었다. 비록 마이클 잭슨 등의 몇몇 슈퍼스타가 출연 요청에 응하지 않았지만, 16시간 동안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공연을 하였고, 그 중 필 콜린스는 3시간 반 만에 대서양을 주파하는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타고, 출연진 중에서 유일하게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무대에 오르는 진귀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BBC, 그리고 미국에서는 ABC가 담당한 TV 실황 중계는 (당시의 언어로 말해보면) ‘지구촌’ 15억 이 상의 인구가 실시간으로 시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엄청난 규모의 행사의 발단이 된 것은 1983년에 시작된 에티오피아 기근이었다. 내전이 계속 되는 정치적 불안과 가뭄이 더해지면서 1985년까지 40만에서 50만으로 추산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에티오피아가 겪은 20세기 최악의 기근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아일랜드 록그룹 붐타운 랫츠(The Boomtown Rats)의 리더 밥 겔도프(Bob Geldof)는 다른 동료와 함께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전역의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에 돌입하였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라이 브 에이드’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보여주듯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전화로 시청자들로 부터 모금을 받았고, 최종 모금액은 1억 5천만 파운드에 달하였다.

정치학자들은 ‘라이브 에이드’의 주역 겔도프를 정치적 대표(political representation)의 새로운 유형으로 본다. 그가 누구를 대표했을까? 아프리카 빈곤층을 대표했다. 아프리카 빈곤층이 그를 대표 자로 선출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그들의 대표자일 수 있었는가? 겔도프로 대변되는 유형을 구성하는 기준은 당사자로부터 위임을 받았다는 공식 자격이 아니라, 그들 편에서, 그들을 위 해 실질적으로 행동하고 발언하는가 여부다. 호주 정치학자 세이워드(Michael Saward)는 이런 유형 의 대표자들이 ‘대표하는 주장(representative claim)’을 함으로써 누군가를 대표한다고 말한다(이외 에도 ‘advocacy’나 ‘surrogacy’와 같은 용어로 사용된다). 실제로 80년대 중반 에티오피아의 빈곤층이 겔도프를 자신들의 대표자로 뽑았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겔도프의 ‘라이브 에이드’는 ‘지구촌’ 청중 에게 아프리카 빈곤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성공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배우 정우성이 예멘 난민들을 대변한 사례가 있다. 난민들 자신의 선택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는 난민들 편에서 그들을 위해 ‘대표 자로서의 주장’을 할 수 있었다.

겔도프와 정우성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자격’이 아닌 ‘주장’을 통해서 대표하 는 행위자들의 중요한 특징들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장’에는 절차적으로 보장되는 위임의 측면이 완 전히 결여된 대신에 미학적 의미의 ‘재현’의 측면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그들은 공통적으로 누군가를 대변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 음악이나 연기를 포기하고 정치나 사회활동에 전적으로 투신하지 않았 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음악가로서, 혹은 연기자로서의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대변자로서의 주장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다. 또한 둘은 모두 자신들이 대변하는 사람들과 같은 처지 에 있지 않았다. 상식적으로는 당사자들의 상황과 경험, 그리고 감정을 공유해야만 그들을 ‘충실하게’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문제에 낯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 해서 대변자는 반드시 당사자들 편에 서면서도, 동시에 그 당사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는 ‘미 학적 간격’ 혹은 ‘재현적 이중성’을 견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재현이란 본질적으로 ‘지금 여기’에 없 는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을 재현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마치 지금 여기에 있는 것처럼 제시하 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정치 이론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선출되지 않은’ 대표자 유형은 다음의 두 영 역에서 활약한다. 첫째, 국가 제도 밖 시민 사회 수준에서, 선거의 다수표로 결집되지 못하는 다양한 소수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공론화한다. 둘째,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 수준의 모두에서 국가 간 의 경계를 넘나드는 쟁점과 당사자들을 대변한다. 또한 ‘라이브 에이드’ 사례가 보여주듯이 ‘선출되지 않은’ 대표자들의 활동의 성패는 미디어의 발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의 활동 결과에 책임을 묻기 힘들고, 개인의 명성에 주로 의존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정치적 대표가 고대 민주주의가 아닌 서양 중세 법정의 소송 대리인 제도로부터 유래한다는 점을 기억한다 면, 선출되지 않은 대변자들의 활동은 오히려 대표의 본질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 불리한 처지에 있는 당사자를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다른 이해 당사자와 청중 앞에서 대변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는 유명인의 자선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실은 선출직 대표자들의 직무 수행에서도 관찰된다. ‘대표의 위기’를 넘어 ‘당사자 정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 제도 정치 안팎에서 더 많은 겔도프와 정우성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원문은 링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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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쩐
' 아프리카 빈곤층이 그를 대표 자로 선출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그들의 대표자일 수 있었는가? 겔도프로 대변되는 유형을 구성하는 기준은 당사자로부터 위임을 받았다는 공식 자격이 아니라, 그들 편에서, 그들을 위 해 실질적으로 행동하고 발언하는가 여부다.'
.. ‘대표의 위기’를 넘어 ‘당사자 정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 제도 정치 안팎에서 더 많은 겔도프와 정우성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부분이 인상깊네요.
conatus
소수자 인권 문제에서 많은 진전이 입법부를 통하기 보다 행정부의 권익위나 헌법재판소 같은 사법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많은 권리 옹호 단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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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쩐
누군가를 대표한다는 의미로 ‘surrogacy’가 대리모 이외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나보군요.
conatus
잘 모르지만 재판정에서 변론하거나 당사자의 권익을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걸 advocate, surrogate 이라고 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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