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비례대표 출마선언문, 이은주>
이은주의 정치 선언, 민주주의행 노동열차, 출발합니다!!
민주주의행 노동열차 출발합니다.
사랑하는 당원, 동료 시민 여러분.
든든한 나의 벗 조합원과 노동자 여러분.
나에겐 자랑스럽고 소중한 이름이 있습니다.
나는 지하철 역무원입니다.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삶의 현장을 오가는 평범한 시민들 속에서 일합니다.
나는 노동자입니다. 27년간 노동운동을 해온 지하철 노동조합의 조합원입니다.
무엇보다 나는 정의당 당원입니다. 민주노동당 이래 20년간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 가치와 소명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동료 당원과 시민 앞에서, 또 하나의 특별한 이름으로 나 스스로를 선언하려 합니다.
나는 오늘 일하는 모든 시민의 대표이자, 정의당의 대표, 그 일원이 되고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정의당 비례대표후보 경선에 출마합니다.
지난 27년 삶의 궤적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과거 지하철은 빈발하는 산업재해, 죽음을 부르는 노동환경, 군대식 노사관계 등 노동자의 ‘지옥철’ 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변화를 위해 모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고단하고 거친 길을 함께 헤쳐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변화로 결과를 증명했습니다. 오늘 지하철 노동조합은 한국 노동을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노조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옥철의 오명을 벗고, 많은 나라가 배우고자 하는 공공서비스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노조의 힘이 공공기관을 공공성과 책임성을 갖도록 이끌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노동조합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강한 노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나에게 민주적 가치와 책임감, 열정을 심어 준 나의 당, 정의당이 있었습니다.
이제 나의 경험과 성공, 좌절과 실패까지도 다 털어 넣어 일하는 모든 시민의 노동조합, 정의당에서 더 넓은 노동, 더 용기있는 변화를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민주주의행 노동열차 이은주, 지금 출발합니다.
출마 이유_변화를 만들어낼 권력이 필요합니다.
나 역시 한때 절반은 반정치주의자였습니다.
정치는 때 묻은 것이고, 권력은 싸워야 할 대상일 뿐, 노동운동이 권력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부끄럽게도 그것이 운동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이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첫 번째 계기는 2011년 시민후보였던 박원순 시장의 당선입니다. 노동조합이 10년 풍찬노숙으로도 풀지 못했던 해고자 문제가 시장이 바뀌자 협상의 길이 순조롭게 열렸습니다. 일터로 돌아오는 동료를 보며 권력은 부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권력을 선용하면 노조의 투쟁만으로 이룰 수 없는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정치의 중심에 서고자 했습니다. 노동조합은 서울 지방정부와 정책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전국 최초의 노동이사제 도입, 지하철 양공사 통합 등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들이 차곡차곡 실현되었습니다.
물론, 정치를 다루며 늘 좋은 시절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동운동 27년 가운데 가장 혹독한 시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당위적 원칙이었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우리는 열정적으로 추진했고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청년 조합원들은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뒤이어 젊은 노동자들의 조합 탈퇴로 이어졌습니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당혹스러웠습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 앞에 가혹한 탄압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현장이 쪼개지고 젊은 후배 조합원들이 노조에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저를 깊은 번민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처음엔 억울하고 화도 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을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배들이야말로 6411번 버스를 타고 도서관과 학원을 투명인간처럼 오가야 했던 살인적 취업 전쟁의 희생자이기 때문입니다.
신분제처럼 더껑이 진 노동시장 내부의 이중구조 문제는 개별 기업노조 혼자 풀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또한 노조의 성취가 곧 민주주의의 성공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 성공한 노조가 실패한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나는 노동운동을 하며 신주처럼 지켜온 원칙이 과연 지금도 정당한지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동을 둘러싼 구조와 문화를 폭넓게 바꾸는 정치 없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각성이,
노동없는 민주주의가 양산하는 수많은 인간적 상처와 절망에 대한 자각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나에겐 변화를 만들 권력이 절실합니다. 이제 사업장의 담벼락을 넘어 노동시민들의 삶 속에서 오래가는 튼튼한 변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것이 나의 출마 이유입니다.
나의 전략_노동에 뿌리내린 강한 정의당을 만들겠습니다.
오늘 우리 민주주의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민주화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극단적 정치갈등이 우리 사회를 심각한 분열로 내몰고 있습니다.
동료 시민에 대한 이해와 관용 대신, 서로를 적폐이자 악마로 몰아세우는 살벌한 증오가 정치공간에 가득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시민이 함께 했던 광장조차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진실을 신봉하는 시민들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양분되어 대립합니다. 어떤 이는 이를 좌우 진영대립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중도 정치가 해법이라고 강변합니다.
나는 이런 진단과 해법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년 넘게 우리 사회를 두 동강낸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극단적 싸움은 진영정치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닙니다.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나는 증오로 가득 찬 이 적대적 대립의 본질은 신구 기득권 사이의 이전투구이며 부자들의 내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동네 서열을 새로 정하기 위한 부자내전에 가난한 동네 시민들이 싸움꾼, 구경꾼으로 동원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영정치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진영 없는 정치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노동을 대표하는 강한 정당이 있는 나라는 사회가 아무리 복잡한 인종과 민족, 종교로 나뉘어져 있어도 훨씬 더 협력적이며 포용력이 있습니다.
사회에 뿌리내린 좌・우파 정당이 균형있게 발전한 나라가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통합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그 나라 시민들의 특별함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을 대표하는 강한 정당이 사회를 협력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통합과 안정, 이에 기초한 변화는 노동의 전제조건입니다. 노동시민을 대표하는 강한 정당들이 견지하는 정치의 기본 원칙입니다.
우리에게 노동에 뿌리내린 강한 정당이 있었다면, 맹목적으로 적대하는 실체 없는 가짜 싸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부자내전에 가난한 시민이 들러리 서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일하는 사람에 뿌리내린 정당이야말로, 사회의 적대와 증오를 막는 최고의 해법이며, 분열을 통합으로 이끄는 정치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당은 일하는 모든 시민의 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의당이 노동 밖의 노동, 여성, 청년 등 배제된 시민을 위한 노동조합이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을 실현하는 것이 내가 가고자하는 노동있는 민주주의입니다. 새로운 노동정치를 향해 노동시민들에게 함께 가자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정치_싸웠다는 물증을 남기기보다 변화의 결과를 책임지겠습니다.
‘나는 이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말에 앞서 ‘어떤 정치인이 되려 하는가’를 먼저 말하겠습니다.
노동시민들이 정치를 갈망하면서도 냉소하는 그 이율배반적 태도와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달콤하지만 공허한 약속들로 정치의 본령을 숨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관념이 아니라 실체를 다뤄온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이 정치의 목적과 수단을 헷갈리지 않게 하는 지혜를 주었습니다.
첫째, 싸웠다는 물증을 남기기보다 변화의 결과를 책임지겠습니다.
단상의 마이크 앞에서만 빛나는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집회장에서 박력있게 호소하는 정치를 위해 출마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나는 노동시민들의 구체적인 권리를 다루는 보이지 않는 협상장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만드는 지루하고 고단한 기초 작업의 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를 하려 합니다.
결과에 책임지는 정치는 때로는 밀고 당기는 지루한 정치 과정을 견뎌내야 하며 때로는 비겁하다는 비난까지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가는 변화는 일거에 화려하게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노동조합에서 배웠습니다. 성공한 협상은 늘 비난과 타협의 회색지대를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걸어 나갔을 때 주어졌습니다.
나는 당당하되 오만하지 않고 주체적이되 현실의 변화를 만드는데 소극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시혜가 아니라 당당하게 참여하고 책임질 권리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를 거부합니다. 물론 그 단어의 선의를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정의당의 노동정치는 ‘선의’로 시작해 ‘시혜’로 끝나는 타 정당의 노동관과는 다른 철학, 다른 언어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대표하는 노동시민은 존중이라는 단어에 고개 숙이고 선물이나 기대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노동은 존중되어져야 하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로 시민 스스로 주장하고 쟁취하는 것입니다. 노동시민이 원하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그동안 시민의 사회경제적 권리가 ‘갑을문제’, ‘민생문제’ 같은 공허한 말로 대체되고, 정작 시민들의 노동권은 권리로서 합당하게 보호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노동은 성공한 노동조합의 조합원만을 호명하는 말로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일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조직 여부, 정규직 여부에 상관없이 기본권으로서 노동권을 주장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정치를 추구하겠습니다.
셋째 다른 무엇보다 정당을 만드는 정치인의 길을 가겠습니다.
나는 법안 발의 숫자나 언론 노출 빈도를 성과로 삼는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 새로운 상품을 내어 놓는 데만 집중하는 정책기술자의 역할로 정치를 대신하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평생을 조직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지금 정의당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약속이 아니라, 단 하나의 약속이라도 실체적으로 책임있게 다루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일하는 모든 시민의 정당이라는 당의 강령 원칙에 입각해, 당을 조직하겠습니다.
우리가 천명한 원칙과 약속이 당원과 시민에게 구속력있고 신뢰받을 수 있도록 꾸준하고 단단하게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노동조합 활동가에게 가장 영광스런 이름은 노조를 건설하고 키운 사람이듯, 정치인에게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당을 당답게, 당을 시민의 자부심으로 건설하고 키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의당의 바로 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의 정책_불평등에 맞서는 최선의 대안은 정치를 불평등하게 조직하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소득주도성장, 4차산업혁명, 기본소득 등 모두가 대안을 말합니다. 그러나 정책과 노선을 내놓기 전에 먼저 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누구의 불평등이 문제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혹여 잘사는 20% 그들 내부의 불평등은 아닌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불평등은 가난한 80%와 나머지 20% 사이의 불평등입니다. 정책이 표방한 선의가 아니라, 정책의 결과가 누구를 향하는지 답해야 합니다.
나는 그 대답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잘사는 20%의 정치적 목소리가 클 때, 아무리 ‘공정’한 정책일지라도 결과는‘불평등’할 것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정치’를 더욱 불평등하게 조직해야 합니다. 그것은 가난한 시민들의 정당, 정의당을 더 크고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노동정책은 정의당이 어떻게 노동시민들을 과감하게 조직할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나는 다섯 개의 정책 방향을 당원 여러분에게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근로기준법’을 뛰어넘읍시다. ‘노동조합법’을 극복합시다.
변화는 법조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조문을 낡고 닳게 만들 때 실현되는 것입니다. 산업과 노동, 현장과 삶 속의 다양한 변화에 발맞춰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 개념은 완전히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누가 노동자인지는 노동하는 시민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노동조합인지 역시 결사의 권리를 가진 시민 스스로 정의하는 것입니다.
나는 우선 근로기준법 2조,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 등의 개정으로 노동자 개념을 확대하고‘노동시민’ 스스로 권리와 힘을 조직할 기반을 만들겠습니다.
둘째, 사회적 대화, 정당이 책임지는 ‘준의회적 기구’로 실질화 합시다.
‘사회적 대화’는 노동있는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초입니다. 사회적 대화의 실질화 여부가 그 나라의 시민 기본권과 민주주의 수준을 말해줍니다.
나는 대통령에게 매달려 있는 사회적 대화를 시민의 대표인 정당이 책임지고 보장하는 사회적 대화로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특히, 정의당이야말로 노동정치의 대표로서 책임감과 적극성을 갖고, 사회적 대화의 비전과 내용을 리드해야 합니다.
사회적 대화기구는 ‘대통령의 기구’가 아닌 책임있는 경제주체와 정치주체가 참여하는 ‘준의회’적 성격을 가진 실질적 기구로 개편해야 합니다.
셋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정의당은 이제 정규직화 다음을 말해야 합니다. 아니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의당은 강령을 통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약속했습니다.
기업별로 맡겨진 정규직화는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고 사유를 제한하는 효과는 있지만 ‘노동자들의 평등과 연대’를 증진하지 못한다는 것을 현장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업별로 더 나은 노동조건을 향한 욕구에 호소하지만 기업규모에 따른 노동격차가 고용형태별 격차보다 더 큰 한국에서는 이대로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넘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해 노동과 정당이 주도하는 ‘산업별 평등임금 체제’를 지향해 나가야 합니다.
어렵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정치가 먼저 길을 열어야 합니다.
넷째, 노동있는 젠더정치를 위해 ‘성별임금공시제’의 전면 시행을 제안합니다.
젠더정치는 이제 노동정치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분배를 위해서도 성별노동격차는 변화를 향한 첫 번째 걸음이어야 합니다.
‘성별임금공시제’의 전면 시행과 성별노동격차에 대한 구체적인 차별시정제도 등을 통해 현장의 노동시민들과 함께 젠더 불평등과 격차 해소의 성과를 먼저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다섯째, 노동 밖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을 제안합니다.
4차산업의 변화를 ‘혁명’이라는 단어로 과도하게 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기업들 간의 산업재편으로 볼 것도 아닙니다.
이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변화임과 동시에 시민들의 삶의 방식과 노동의 형태를 둘러싼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향해 정의당이 먼저 변화를 주도합시다.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결성도 어려운 이 노동시민들에게 정의당이 먼저 정치의 힘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조직합시다.
우선, 플랫폼 노동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만들고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의 길을 열어냅시다.
이를 통해 플랫폼 노동자들을 새로운 시대의 노동정치의 동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노동있는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당원, 동료 시민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시민이 ‘노동자’로 호명되어지고 시민 기본권으로서 ‘노동권’이 실현되는 나라. 일하는 시민들이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사회. 이것이 내가 여러분과 함께 가고자 하는 노동있는 민주주의입니다. 정의당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일하는 시민을 자랑스럽게 하겠습니다.
4월 15일, 노동있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만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