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비례대표 출마선언문, 배복주>
안녕하세요. 정의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 배복주입니다.
저는 3살이 되던 해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장애가 없이 걸어 다니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당시에 장애를 갖게 된 이유를 몰랐던 어머니는 저를 안고 많이 울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슬픔과 고통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누구도 어머니에게 장애를 갖게 된 딸의 앞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서, 어머니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견딜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평생 동안 저를 보면서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오늘날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은 과연 얼마나 다르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여전히 장애자녀를 둔 부모님은 국회로 달려와 외칩니다. “가족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외칩니다. 저의 어머니를 비롯해 장애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자책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며, “내가 아니어도 내 자녀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보정치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습니 다.
저는 학창시절 학급반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 중에 남학생은 반장, 여학생은 부반장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반장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장애가 있어서 학급의 리더를 하기엔 어렵다. 그리고 여학생은 반장이 될 수 없다.” 저는 그때 ‘장애가 있는 여자는 리더가 될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공부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공부와 담을 쌓아버렸습니다.
아마도 저는 그때 사회의 룰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비정상’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교실을 가기위해 계단의 난간을 붙들고 5층까지 올라가는 ‘극복’을 하지 않으면 2등 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때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반장이 될 수 없는지 따져 물어보지 못했을까? 왜 5층의 계단을 올라가기보다 1층에 교실을 배치해달라고 요구하지 못했을까? 그때는 사회의 시스템에 제가 적응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구조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구조가 무엇인지를 토론해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20년 넘게 장애여성인권운동 활동가로 살아왔습니다. 저의 활동공간은 저의 삶의 경험이 차별의 경험을 가진 다른 소수자들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감각과 감수성을 배울 수 있는 배움과 연대의 공간이었습니다.
ㅁ ‘미투 운동’ 과제를 국회가 응답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특히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활동과 성폭력사건공대위 활동현장에서 만난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험들이, 내가 경험했던 성폭력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차별적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피해자의 위치’에 따라 일상적으로 침범하는 ‘범죄’입니다. 저 또한 학교에서 마음대로 나의 신체를 만지는 선생님에게 어떤 방어도 할 수 없었고, 버스 안에서 길거리에서 도망갈 수도 없는 나의 신체는 무방비로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지원했던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힘과 권력 앞에서 저항할 수 없었고, 저항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으며, 주변으로부터의 비난과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피해가 재생산되는 상황이 바로 ‘미투 운동’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큰 울림과 성찰을 주었던 ‘미투 운동’의 과제를 국회가 응답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ㅁ 인권은 구호가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또한 저는 지난 2년 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시간동안 저는 진정된 사안을 심의하기 위해 빼곡한 기록들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기록 속에 등장하는 진정인들의 이야기는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한 호소로 가득했습니다. 국가기관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차별, 노동현장에서의 비정규직 차별, 성소수자들이 겪는 혐오와 차별, 조직 내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성희롱과 성차별,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과 인권침해 등 다양한 사안들을 권고하거나 의견표명의 결정을 하는데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진정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한계를 느낀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성’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정상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정상의 기준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도는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으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어색하고 불편한 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옷들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하나의 기준’이 아닌 다양한 사람에게 맞는 기준으로 ‘다양하게 옷을 제작’해야 합니다. 그 제작과정에 저의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의회정치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ㅁ 정의당과 함께 다양성의 정치를 실현 하겠습니다.
저는 인권운동가이고 성폭력 문제를 정면에서 대응하고 맞서 온 미투 운동가이며 장애 여성인권활동가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정의당의 정치인이 되고자 합니다.
정의당은 진보정치를 지향하고 있고, 이번 총선에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의 지향과 시도를 지지하며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다양성의 정치’가 정의당과 함께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의당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장애여성 당사자라는 ‘이미지’로만 보여지는 것을 경계하고 거부합니다. 저의 삶과 활동의 경험으로 장착된 ‘감각’과 ‘감수성’을 주목해주시길 기대합니다.
ㅁ 사람의 일상에서 복 주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장애’는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닙니다. 장애인이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불평등’은 개인의 능력으로 해소되지 않습니다. 평등한 사회구조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인권’은 타협과 협상의 언어가 아닙니다.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해야 할 절대적 가치입니다. 이제 우리 정치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진지하게 경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에게는 일상의 문제가 가장 ‘절실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의 일상에 ‘복 주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