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비례대표 출마선언문, 이헌석>
전기 콘센트 속 아우성이 들리십니까?
환경운동은 배부른 투정?
저는 ‘환경운동은 중산층의 배부른 투정’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1990년대 환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환경문제가 뭐 중요하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는 사회진보와 변혁을 말하는 사람 중 일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모습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1997년 인천 앞바다 영흥도에 지어질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반대반대 운동에 나선 지역주민들에서 ‘배부른 투정’은 볼 수 없었습니다. 2003년 부안과 2005년 경주·군산·포항·영덕의 핵폐기장 반대 운동, 2007년 가로림만과 강화 조력발전소 반대 운동, 2012년 고리와 월성 핵발전소 폐쇄 운동,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대전 핵시설 반대 운동, 영덕과 삼척 핵발전소 반대 운동, 기장 해수 담수화 시설 반대 운동, 경주 월성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이주운동, 인천 수소연료전지발전소 반대 운동까지 다양한 지역 주민운동에 결합하면서 저는 그들의 아우성을 들었습니다. 모두 자신의 생존권과 후손들을 위한 책임에서 나온 외침이었습니다.
석탄재가 집 앞에까지 날아들고, 삶의 터전인 갯벌이 파괴되고, 도심 하천과 아이의 몸에서 방사성 물질이 나오지만,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전기’, ‘값싼 전기’의 혜택을 보고 있는 가진 자들이 ‘배부른 투정’이라며, 그들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기후위기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고 이제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기후위기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위기를 말하고, 저마다의 해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갈 길은 여전히 많이 남았습니다. 환경문제를 말하는 이들이 정치권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아직 국회는 회색빛입니다. 말로는 환경문제를 생각한다지만, 환경문제를 정작 거대자본과 기득권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쓰는 이들도 많습니다. 진보정당은 이런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와 에너지전환으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 사업과 핵 산업에 매진했던 글로벌 대기업들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테슬라와 같이 혁신적인 전기차 기업 앞에 거대 자동차 기업은 전전긍긍하며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거대자본은 자신의 살길을 찾아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중소 상공인과 노동자는 거대한 변화 앞에 놓여 있습니다. 진보정당이 이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불과 몇 년 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은 거대한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결국 환경도 망가지고 사람들의 삶도 망가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전기 콘센트 속 아우성이 들리십니까?
어느 집에나 있는 전기 콘센트.
저에게는 ‘전기 콘센트’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소리가 들립니다. 매일 편하게 사용하는 전기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했습니다. 각종 발전소와 핵폐기장, 송전탑 인근 주민들의 목소리,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기후위기에 고통받을 후손들의 목소리, 거대한 변화 앞에 내몰린 노동자와 중소상공인들의 목소리까지……
저는 그들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한국 사회 전면에 내세우겠습니다.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전환, 그린 뉴딜 정책은 이런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보정치는 탁상머리 논의나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언제나 정답은 현장에 있었습니다. 다양한 지역주민과 노동자,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빼놓고 진보정치, 초록 정치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참여해주신 시민선거인단 여러분.
누구나 기후위기를 말하지만, 전기 플러그 뒤에서 소리 한 번 외쳐보지 못한 그들을 위해 국회와 한국 사회를 바꿀 기회를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헌석 올림